지나는 행인들의 어깨 위에 복스러이 쏟아내 내리던 비가 멎었다. 비가 오니 괜스레 심신이 울적하여 며칠 전에 대청소를 하면서 차곡차곡 접어둔 편지랑 한쪽 구석에 쳐박아 놓았던 사진들을 끄집어내었다. 이러한 것들은 나의 무료함을 달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케케묵은 편지들과 빛바랜 사진들은 나를 다시금 옛날로 돌아가게 했고 공허한 가슴을 그리움으로 물들게 했고, 보라빛 환상 속으로 나는 어느새 빠져들고 있었다. 해묵은 조그만 수첩을 펼쳐드니 여고시절의 내가 담겨져 있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페이지 아래에는 입시 며칠 전이다 라는 숫자와 함께 그리운 말 한 마디가 구석구석 채워져 있다. 어떤 페이지는 친구의 낙서로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간간이 선생님들의, 특히 젊고 미남인 총각 선생님의 나부랭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