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니 뭐니 깊게 들어가면 내가 불리해짐... 말을 아낀다. 젠더 개념의 등장 이후 성을 XX/XY염색체로 나누는 방식은 구식이 되었다. 누구를 사랑하느냐, 나 자신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가 곧 스스로의 성이다. 포괄 개념 자체가 서서히 정립되어 가는 중이니, 이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애꿎은 예시는 써먹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양분할 수 있을까? 오직 두 가지로 나눠지는 물질이 남아있단 말인가? 다행히 딱 하나는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완벽하게 양분할 수 있다. 삶은 죽음이 될 수 없고, 죽음은 삶이 될 수 없다. 때문에 그 사이의 줄타기는 어느 서스펜스보다도 더욱 카타르시스를 준다. 삶은 앞둔 죽음, 죽음을 앞둔 삶. 사르트르는 죽음을 앞둔 삶에..